교회공동체, 특히 공예배에서의 대표기도는 기도자 자신이다.
예배공동체의 시간에, 대표기의 순서를 맡게 된 자는 자신을 영적으로 아론의 후손이라는 거룩함이 준비되어야 한다. 구약에서 아론의 후손이 제사장의 임무를 담당하게 될 때, 담당하게 될 일을 위해서 정결케 되어야 하였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거룩한 자를 요구하신다.
하나님께 드려져서 봉사해야 할 레위인들은 거룩해야 하였다. 영적인 레위인인 우리도 정결케 되어야 한다. 신앙적인 성결이 우선 요구된다.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욥 17:9) 영적으로 깨끗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다.
예배기도자로 선택이 되었다면 자신을 예배자로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간구하는 내용보다도 자신이 먼저 기도라는 사실이다. 아벨과 그의 자시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기도자가 먼저 하나님께 드림이 되어야 한다. 부족한 사람이 『큰글씨 대표기도 찬양예배+수요기도』를 내놓은 이유는 최소한 우리가 예배의 기도에서 이러한 내용을 간구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제시하여 기도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 자기를 준비함에 도움이 되려는 의도에서이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의 지혜와 열심이 아닌, 계시해 주신 방법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심에 따라 순종하여 섬겨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정하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섬김이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모든 제도와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였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따르면 안 된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따라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임을 당한 원인은 직분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직분을 망각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이 따르기 마련이다.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고 사망을 면하라고 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그 당시 직분을 망각하고 술에 취해 회막에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고 하였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신전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재앙을 받았다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성막에서 일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전인격적인 신전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죽었던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성도들이 신전의식이 강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전의식은 당연히 필요하다.
대표기도는 예배의 한 순서가 아니라 예배, 그 전부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배공동체를 받으신다. 그러므로 기도자로 선택이 된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대로 기도하지 않기를 원하신다고 깨닫는다. 이 귀한 사역에 헌신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감격스럽게 한다.